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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REVIEW

NH농협 2015-2016 V-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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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의 2015~16시즌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극강의 전반기와 추락의 후반기, 그리고 반전의 포스트시즌’이다. 현대건설은 전반기에는 12승3패의 호성적을 거뒀다. 패한 3경기도 모두 풀세트 접전을 치르며 전반기 15경기에서 모두 승점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2위 그룹과 큰 격차를 벌리며 일찌감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흘러나올 정도로 전반기 현대건설의 경기력은 나머지 5개 팀에 비해 월등했다.

그러나 후반기 15경기는 ‘현대건설이 맞나’ 싶을 정도의 기복이 심한 경기력을 보이며 5승10패에 그쳤다. 결국 정규리그 우승컵은 시즌 중반 12연승의 상승세를 달린 IBK기업은행에게 내줘야 했다.

정규리그 시즌 전개만 보면 2014~15시즌과 비슷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선 180도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건설은 2014~15시즌에도 전반기를 11승4패로 선두로 마쳤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7승7패에 그치며 도로공사, IBK기업은행에 추월당하며 정규리그를 3위로 마쳤고, 2위 IBK기업은행과의 플레이오프에서 2전 2패로 패퇴하며 허무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2015~16시즌 포스트시즌은 달랐다. 흥국생명과의 플레이오프를 2전 2승으로 끝내고, ‘디펜딩 챔피언’ IBK기업은행과의 챔피언 결정전마저 압도적인 전력차를 과시하며 3전 3승으로 속전속결로 끝냈다. 특히 챔피언 결정전 3경기를 모두 3-0으로 승리하며 V-리그 역사상 남녀부 최초로 챔피언 결정전 무실세트 대기록을 작성했다. 선수들의 개인 기록도 풍성했다. 양효진은 세트당 0.741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블로킹퀸’ 7연패를 달성했다. 정규리그서 2~3라운드 MVP에 올랐던 양효진은 챔피언 결정전 MVP에도 선정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기록의 여왕’ 황연주는 개인 통산 다섯 번째 챔프전 우승 반지를 꼈다.

◆ 반전의 시작은 양철호 감독의 ‘발상의 전환’
2015~16 V-리그 여자부의 가장 큰 변화는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 제도의 신설이었다. 현대건설로선 트라이아웃이 달갑지 않았다. 현대건설과 2014~15시즌을 함께한 폴리(아제르바이잔)가 V-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었기 때문. 폴리는 매우 강력한 공격력을 뽐내며 득점, 공격 종합, 오픈, 백어택, 서브 등 5개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올 시즌 현대건설이 함께 한 에밀리 하통은 폴리와는 정반대 스타일의 외국인 선수였다. 신장도 1m88로 작고, 공격력도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나머지 5개 구단이 공격형 용병을 뽑은 데 반해 현대건설이 에밀리를 뽑은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양철호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시즌 초반 양 감독에게 에밀리를 택한 이유를 묻자 “지난 시즌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폴리를 데리고도 정규리그 3위에 그쳤고, 플레이오프 2전 2패로 탈락했다. 트라이아웃에서 폴리보다 더 나은 공격력을 가진 선수를 뽑을 수 없다면야 아예 반대로 공격력은 약해도 팀의 약점인 리시브와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를 뽑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양 감독의 발상의 전환은 그대로 먹혔다. 에밀리는 공격력은 다소 아쉬웠지만, 안정적인 리시브와 디그 등 궂은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4~15시즌에 공격 관련 지표는 좋았으나 팀 수비력이 아쉬웠던 현대건설은 에밀리가 가세하면서 단숨에 코트 후방이 든든해졌고, 접전 상황도 버텨내는 끈끈한 팀으로 변모했다.

에밀리의 부족한 화력은 ‘연봉퀸’ 센터 양효진과 리시브 부담에서 해방된 라이트 황연주가 채워줬다. 덕분에 2015~16시즌 여자부 득점 순위 'TOP10'에 3명(에밀리 5위, 양효진 8위, 황연주 9위)을 배출한 팀은 현대건설이 유일했다. 공격과 수비, 블로킹 등 모든 부분에서 잘 맞물려가는 톱니바퀴처럼 선수들이 제각기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낸 전반기 현대건설의 적수는 없었다. 전반기를 12승3패, 승점 35로 IBK기업은행(승점 28, 9승6패), 흥국생명(승점 25, 9승6패)를 넉넉히 앞서며 1위로 마쳤다.

에밀리는 팀 분위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최고의 기량을 보유했지만,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팀워크를 저해했던 폴리와는 달리 에밀리는 원만한 성격으로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현대건설 선수단이 하나로 뭉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조금씩 닳기 시작한 현대건설의 톱니바퀴, 최악의 후반기
후반기 첫 경기였던 KGC인삼공사전을 3-0 완승을 거둬 전반기 기세를 이어가는 듯 했던 현대건설. 그러나 2015년 마지막 날(12월31일)의 흥국생명전서 0-3으로 패한 뒤 현대건설의 경기력은 기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반기엔 견고했던 에밀리의 리시브가 흔들리면서 레프트 정미선-리베로 김연견 라인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세트 플레이의 비중이 높았던 현대건설에게 있어 리시브 불안은 곧 공격력 반감을 의미했다.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자 팀의 고질병이었던 ‘범실 망령’이 되살아나며 자멸하는 경기도 나왔다.

4라운드를 2승3패로 마친 현대건설은 5라운드 들어 1승4패로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특히 외국인 선수로 뛰지 않은 최하위 KGC인삼공사에 2-3으로 패한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선두 자리는 시즌 중반 12연승 행진을 달린 IBK기업은행에 빼앗기고 말았다.

6라운드에 선두 IBK기업은행 공격의 핵인 김희진과 맥마혼이 연이어 부상을 당하면서 정규리그 역전 우승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2월27일 맞대결에서 김희진, 맥마혼이 모두 결장했음에도 풀세트 접전 끝에 패하면서 IBK기업은행의 정규리그 우승 확정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자다
후반기에 극도로 부진을 보인 현대건설. 마냥 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양 감독은 후반기 들어 팀이 침체에 빠지자 일찌감치 포스트시즌을 대비한 체력훈련에 돌입하며 ‘큰 그림’을 그렸다. 그 결과 현대건설은 정규리그에서 2승4패로 열세를 보였던 흥국생명과의 플레이오프를 2승으로 빠르게 돌파했고, 후반기 맞대결 3경기를 내리 내줬던 IBK기업은행과의 챔프전 결정전도 3전 3승으로 끝냈다.

양효진-황연주-에밀리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는 전반기 때의 위력을 되찾았다. 여기에 레프트 주전 한 자리를 정미선보다 수비력은 떨어지지만, 공격력이 월등한 베테랑 한유미로 바꾼 게 큰 효과를 봤다. 맏언니로서 코트 위의 리더 역할까지 해주는 한유미가 가세하면서 염혜선-이다영 등 현대건설 세터들은 어느 로테이션이든 항상 든든한 공격옵션을 보유하게 됐고, 상대 블로커들은 현대건설의 다채로운 공격에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모든 일은 ‘운칠기삼’이라고 했던가. 현대건설의 우승엔 운도 크게 따랐다. 포스트시즌에서 만난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이 모두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 흥국생명은 레프트 발바닥 부상을 입은 레프트 테일러를 퇴출시킨 뒤 기량이 한참 못 미치는 센터 알렉시스를 데려왔고, 이는 2년차 토종 주포 이재영의 공격부담 가중으로 이어졌다. IBK기업은행은 한술 더 떠 맥마혼이 외국인 교체 시한이 지난 6라운드에 왼쪽 손가락 골절상을 입어 교체조차 못했다. 결국 맥마혼은 챔프전 코트 위에 모습을 단 한 번도 드러내지 못했다. 정규리그 득점 3위(727점), 공격종합 1위(41.27%)의 맥마혼의 빈자리는 예상보다 훨씬 컸다. 6개 구단 최강의 토종 쌍포인 김희진-박정아만으로는 황연주-양효진-에밀리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에 센터 김세영-레프트 한유미의 ‘베테랑 듀오’까지 동시에 터진 현대건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남정훈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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